북이스라엘

북이스라엘(분열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왕의 사후 기원전 931년경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북쪽의 10개 지파가 여로보암 1세를 중심으로 세운 성경 속 가나안 지역의 왕국이다. 수도는 세겜과 티르사를 거쳐 사마리아로 정해졌으나, 지속적인 정변과 우상숭배의 길을 걷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비극적인 멸망을 맞이하였다.

개요

북이스라엘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 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중세(重稅) 정책에 반발한 북부 10개 지파가 독립하여 건국한 국가이다. 성경에서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구분하기 위해 '이스라엘' 또는 수도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적·지리적으로는 남유다보다 훨씬 풍요롭고 영토도 넓었으나, 정교일치의 신정국가적 정통성이 부재했고 정치적 불안정이 극심하여 19명의 왕이 거쳐 가는 동안 무려 9개의 왕조가 바뀔 정도로 쿠데타와 암살이 빈번했다. 선지서는 북쪽 왕국을 가장 큰 지파의 이름을 따 에브라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호세아는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라 하여 둘을 나란히 놓고, 에스겔은 유다의 막대기와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의 막대기를 둘로 갈라 보인다.

성경 속 기록 및 주요 사건

건국자인 여로보암 1세는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는 종교적 배교를 단행했다. 이 행위는 성경 전체에서 '여로보암의 죄'로 단죄받는 계기가 된다. 이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오므리 왕조 시대에 수도를 사마리아로 이전하고 경제적·군사적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오므리의 아들 아합 왕은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 신앙을 국교 수준으로 도입했고, 이에 맞서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강력한 종교 개혁과 심판을 선포하였다. 예후의 혁명으로 오므리 왕조가 몰락한 후, 예후 왕조의 여로보암 2세 때에는 잠시 영토를 확장하며 최대 번영을 누렸으나, 속은 부패와 불의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앗수르에 의해 사마리아가 함락되면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였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성경의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를 행한 국가가 어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지 증언한다.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호세아와 아모스는 음란한 영적 상태와 빈부격차, 부패한 종교를 강렬하게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했으나 백성들은 이를 외면했다. 성경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단순한 강대국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좇은 영적 몰락의 필연적 결과로 해석한다. 이들의 포로 이송과 혼혈 정책은 훗날 복음서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배척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