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 1세

솔로몬 왕의 신하이자 건축 감독관 출신으로,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의 분열을 이끌어 북이스라엘 왕국을 창건한 첫 번째 군주이다. political independence를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사설 제사장을 임명하는 등 종교적 혼합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이후 구약 성경에서 배도와 우상숭배의 대명사인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신학적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개요

구약 성경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인물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남유다북이스라엘로 분열될 때 북쪽 10개 지파의 추대를 받아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오른 인물이다. 부친 느밧과 어머니 스루아 사이에서 태어난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솔로몬 왕 밑에서 대규모 건축 공사의 감독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만년 타락과 가혹한 과세, 노역으로 민심이 이반되자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10개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정치적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생애 및 성경적 기록

여로보암은 본래 용맹한 인재로 솔로몬에 의해 밀로(Millo) 성벽 재건 및 다윗 성의 보수 공사를 감독하는 중책을 맡았다. 공사 과정에서 북쪽 지파 노동자들의 불만을 목격하고 반란을 꾀하다가 솔로몬에게 덜미를 잡혀 이집트(애굽)로 망명하여 시삭(Shishak) 왕의 보호를 받았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여로보암은 귀국하여 백성들의 대표로 르호보암에게 과도한 조세와 노역을 줄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젊은 신하들의 자문을 받아 더욱 강경한 압제를 선포하자,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제외한 10개 지파가 반란을 일으켜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이 된 여로보암은 세겜을 첫 수도로 삼았으나 곧 정치적 신학적 위기에 직면했다. 백성들이 절기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남유다로 기울어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에 정치적 유익을 위해 벧엘과 단 두 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선언하였다. 더불어 레위 자손이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율법에 정해진 절기(7월 15일)가 아닌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8월 15일)에 절기를 지키게 하는 국가적 종교 개악을 단행하였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열왕기서 및 역대기서를 작성한 신명기적 역사가들에게 여로보암 1세는 '악한 왕의 절대적 표준'으로 규정된다. 성경은 이후 등장하는 북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숭배 왕들에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다"는 평가를 반복해서 내린다. 신학적으로 여로보암의 실책은 하나님이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주셨던 약속("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면 내가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겠다")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정치적 계산과 안보적 두려움 때문에 종교를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킨 데 있다. 참된 예배를 인위적인 종교 구조로 대체한 그의 죄는 북이스라엘 전체가 훗날 앗수르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영적으로 몰락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