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지협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로, 동서 해상 무역의 중심지이자 로마 제국 아가야 주의 수도였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 약 1년 6개월간 체류하며 교회를 세우고 사역한 곳으로, 신약성경 고린도전후서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다.
개요
고린도(Corinth)는 고대 헬라의 대표적인 도시국가 중 하나로, 아테네 서쪽 약 80km 지점의 고린도 지협(Isthmus)에 위치했다. 이오니아 해의 레카이온 항구와 에게 해의 켄크레아 항구를 동시에 거느린 덕분에 동서 해상 무역의 거대한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사도 바울 사역 당시의 고린도는 경제적 풍요와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대도시였으나, 동시에 극심한 세속화와 도덕적 음란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던 곳이었다.
성경 속 기록 및 주요 사건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중 아덴(아테네)을 거쳐 고린도에 도착했다(사도행전 18:1). 이곳에서 바울은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칙령으로 쫓겨온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으며, 생업인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하며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했다. 유대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바울은 이방인인 티디오 유스도의 집으로 사역지를 옮겼고, 회당장 크리스보를 비롯한 수많은 고린도 주민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신 용기의 말씀을 바탕으로, 바울은 이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체류하며 교회를 굳건히 세웠다. 바울이 머무는 동안 유대인들이 그를 아가야 총독 갈리오의 재판정에 법정 고소하였으나, 갈리오는 종교적 비본질에 관한 문제라 하여 재판을 기각하였다. 바울이 떠난 후에는 학식과 언변이 뛰어난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의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 교회 내의 분열, 근친상간, 법정 소송, 우상 제물 문제, 성만찬 오용 및 은성 문제 등을 바로잡고 오직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집필하여 전달했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고린도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타락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복음이 어떻게 강력하게 역사하여 성령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신학적 현장이다. 고대 희랍어에서 '고린도인처럼 행동하다(κορινθιάζομαι)'라는 말은 '음란하게 살다' 또는 '방탕하다'를 의미할 만큼 부패한 도시였지만, 복음은 이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았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드러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세상의 영적 도전과 인간적 파당주의(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에 흔들리는 지상의 교회가 걸어가는 고뇌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인간의 지혜나 육체의 자랑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강조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 세속화의 도전 속에서 교회가 거룩성을 지키고, 사랑(고린도전서 13장)과 그리스도의 몸 된 유기적 통일성을 유지해야 함을 강력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