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신국론·삼위일체론을 남긴 사람이다. 성경은 이 사람을 적지 않으므로, 이 문서는 그의 책이 스스로 적는 데까지만 말한다 — 로마서의 한 구절을 읽고 돌아선 자리, 악을 선의 결핍이라 부른 자리, 삼위일체를 사랑에 견주었다가 스스로 물린 자리, 그리고 펠라기우스파와 다툰 쟁점이다. ※ 이 문서는 성경 밖의 교회사·신학사를 다룬다. 성경 본문이 아니라 역사 기록과 신학 전통에 기댄 서술이 들어 있다.
개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신국론·삼위일체론을 남긴 사람이다. 이 문서가 대는 것은 그 책들과 율리아누스 반박(미완성) 넷이다.
성경은 이 사람을 적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어난 해와 죽은 해, 직분, 살던 곳, 그리고 그의 신학이 뒷날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 문서가 적지 않는다. 책이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집어 읽어라’ — 고백록이 적는 회심
고백록은 그가 돌아선 자리를 읽은 구절까지 적는다.
- 소리를 들었다 — 이웃집에서 사내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를 목소리가 집어 읽어라, 집어 읽어라를 되풀이해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고 적는다.
- 앞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 안토니우스라는 이가 마침 듣게 된 복음서 낭독에 깨우쳐 곧바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 낭독은 이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태복음 19:21)
- 사도의 책을 집었다 — 집어 들고 펴서, 눈이 처음 닿은 대목을 소리 없이 읽었다고 적는다. 그 대목은 이것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3-14)
- 거기서 멈췄다 — 더 읽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고 적는다. 그 문장이 끝나자 마음에 평안의 빛이 부어진 듯 의심의 어둠이 모두 흩어졌다는 것이다.
- 곁에 있던 이가 이어 읽었다 — 알리피우스가 무엇을 읽었느냐고 하기에 보여 주었더니 자기가 읽은 데보다 더 나아가 살폈고, 이어지는 말씀이 이것이었다고 적는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로마서 14:1)
악은 무엇인가 — ‘선의 결핍’
신국론은 악을 ‘있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으로 적는다.
- 본성은 악이 아니다(XI권 22장) — 어떤 본성도 결코 악이 아니며, 이 이름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라고 적는다.
- 악한 의지에는 ‘만든 원인’이 없다(XII권 7장) — 악한 의지의 작용인을 찾지 말라. 작용인이 아니라 결여인이다. 그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 떨어져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가장 높이 있는 것에서 덜한 것으로 떨어지는 것, 그것이 악한 의지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라 잇는다.
- 그 원인을 캐는 일에 대하여 — 어둠을 보려 하고 침묵을 들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적는다.
신정론 문서가 악은 선의 결핍이라 적는 자리의 근거가 여기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신정론이라는 이름은 뒷날 붙은 분류다 — 그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사랑에 견준 자리 — 그리고 그가 스스로 물린 자리
삼위일체론 VIII권은 사랑을 이렇게 나눈다 —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것이고, 사랑으로 무엇인가가 사랑받는다. 보라, 셋이 있다 —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것과, 사랑이다.
다만 이 대목은 그 셋을 성부·성자·성령에 ‘배정하지’ 않는다. 그 자리 둘레에 세 위격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그는 곧바로 이렇게 잇는다 — 여기서 더 높이 올라가 이것들을 찾는 일이 남아 있다 … 아직 그것을 찾은 것이 아니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찾은 것이다.
그는 XV권에서 그 자리를 스스로 되돌아본다. 성경이 하나님이라 부른 사랑에 이르렀을 때 삼위일체가 조금 빛났다 — 곧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것과 사랑이다라고 적고, 이어 그 형언할 수 없는 빛이 우리 시선을 되쳐 사람의 마음 쪽 고찰로 돌아갔다고 적는다. 실제로 IX권에서 그는 셋을 마음과, 마음이 자기를 아는 앎과, 그 앎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바꾸어 다시 잡는다.
그러므로 이 인용이 받치는 것은 ‘그가 사랑에서 셋을 보았다’까지다. 삼위일체에 세 위격을 이 비유에 붙여 적으려면 이 대목이 아니라 다른 근거를 대야 한다.
펠라기우스파와 다툰 쟁점
율리아누스의 두 번째 답변을 반박하는 미완성 작품은 무엇을 두고 다투는지를 서문에 적는다 — 펠라기우스파 이단들을 반대하여 — 그들은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몸으로 죽었을 것이며, 그 안에서 인류가 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죄와 예정론이 논쟁이라 적는 자리에서 무엇이 쟁점이었는지가 여기 있다.
이 책은 대화체다 — 율리아누스의 말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답이 번갈아 적힌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문장을 가져올 때는 누가 한 말인지 반드시 갈라야 한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1. 성경이 적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문서가 대는 근거는 그의 책뿐이고, 책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이 문서도 말하지 않는다.
2. 그가 돌아선 자리는 성경 한 구절이었다: 고백록은 그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로마서 13:14).
3. 악을 ‘있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악의 작용인을 찾지 말라고 적는다.
4. 그가 곧바로 형제를 불렀다: 곁에 있던 이가 이어 읽은 말씀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로마서 14:1)였다고 적는다.
5. 그의 생애와 직분, 그리고 뒷날의 평가를 성경도 그의 책도 밝혀 적지 않는다 — 이 문서는 적는 데까지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