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

남유다 왕국의 왕으로, 요담의 아들이자 히스기야의 아버지이다. 아람-북이스라엘 동맹군의 침공에 맞서 앗수르에 구원을 요청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 제단을 도입하는 등 심각한 우상숭배와 친앗수르 정책을 펼친 왕이다.

개요

남유다 왕국의 왕. 성경 역대기 및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그 조상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등 극심한 우상숭배를 저질렀다.

정치적으로는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공으로 위기에 직면하자, 선지자 이사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대규모 조공을 바치며 구원을 요청했다.

성경 속 기록 및 주요 사건

열왕기하 16장과 역대하 28장, 그리고 이사야서 7장에 아하스의 치세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람과 에브라임의 침공과 이사야의 경고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다. 이때 아하스는 심각한 공포에 휩싸였으나,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임금과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전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징조를 구하라고 권유했으나, 아하스는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라며 거절하였다. 이에 이사야는 임마누엘 징조 예언(이사야 7:14)을 선포하게 된다.

다메섹 제단 모방과 종교적 퇴보

아하스는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은금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했고, 앗수르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점령하고 르신을 죽임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후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접견하러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의 이방 제단을 보고, 그 양식과 제도의 도면을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에 동일한 제단을 건축하게 했다. 그는 여호와의 놋제단을 뒤로 밀어내고 이방식 제단에서 번제를 드렸으며, 성전 기물들을 훼손하고 앗수르 왕을 의식하여 성전 구조를 변경하는 등 사대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인 종교 정책을 펼쳤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신학적으로 아하스는 다윗 언약의 정통성을 가진 유다 왕가 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Emunah)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정치적 계산과 이방 세력을 의지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1. 인간적 꾀와 불신의 한계: 눈앞의 위기를 면하기 위해 하나님 대신 세상적인 강대국을 의지한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재물을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유익이 없었다(역대하 28:21).

2. 메시아 예언의 역설적 배경: 아하스의 불신앙과 징조 거부는 역설적으로 '동정녀 탄생과 임마누엘' 예언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아하스라는 왕은 무능하고 신실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신다는 대조를 보여준다.

여담 및 상식

  • 죽음 이후의 대우: 역대하 28장 27절에 따르면 아하스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그를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으나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는 집어넣지 않았다.

아하스의 가족

부모 요담(아버지) 마태복음 1:9

배우자 아비 열왕기하 18:2

자녀 히스기야 마태복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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