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마태복음의 명단 끝에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고 적힌다({마태복음 10:4}). 제자 공동체의 돈 궤를 맡았으나({요한복음 12:6})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넘겼고({마태복음 26:15}), 뒤에 스스로 뉘우쳐 그 은을 도로 갖다 준 후({마태복음 27:3})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태복음 27:5}).
개요
열두 사도의 명단은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태복음 10:4})로 끝난다. 신약성경은 그를 언제나 명단 맨 끝에 두고 「예수를 판 자」라는 말을 붙인다. 요한복음은 그를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라 적고({요한복음 13:26}), 누가복음은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라 적는다({누가복음 22:3}). 그는 제자 공동체에서 돈 궤를 맡았는데,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한복음 12:6})라고 밝힌다.
예수를 팔다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요한복음 12:5})라며 나섰다. 요한복음은 그것이 가난한 자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고 덧붙인다({요한복음 12:6}).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값을 흥정하였다 —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마태복음 26:14}),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마태복음 26:15}).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께서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마태복음 26:21})라고 이르셨고,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묻자 “네가 말하였도다” 하고 답하셨다({마태복음 26:25}). 누가복음은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라고 적는다({누가복음 22:3}). 겟세마네에서 그는 미리 군호를 정해 두었다 —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마태복음 26:48}). 그리고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마태복음 26:49}) 예수께서 잡히셨다.
마지막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마태복음 27:3}),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5}). 대제사장들은 그 돈을 어떻게 할지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마태복음 27:7}),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마태복음 27:8}). 사도행전은 그 밭을 「아겔다마」라 부르며 「피밭」이라는 뜻이라고 적는다({사도행전 1:19}). ⚠️ 그의 죽음은 두 곳에 적혀 있고 표현이 다르다 — 마태복음은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5}), 사도행전은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사도행전 1:18})라고 적는다. **이 문서는 성경이 적는 두 기록을 그대로 옮기고, 둘을 맞추는 해석은 적지 않는다.** 그가 빠진 자리는 맛디아가 채웠다 —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사도행전 1:26}).
신학적 의의 및 교훈
신약성경은 유다의 배반을 구약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으로 읽는다. 시편은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편 41:9})라고 노래했고, 스가랴는 은 삼십과 토기장이를 함께 말한다({스가랴 11:12}·{스가랴 11:13}). 그러나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이 그 자신의 책임을 덜어 주지는 않는다. 마태복음은 그가 “스스로 뉘우쳐”({마태복음 27:3}) 은을 돌려주었다고 적지만, 그 뉘우침은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도 돌이켜 회복된 베드로와 뚜렷이 대비된다({누가복음 22:62}·{요한복음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