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칼뱅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를 남긴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성경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들어가는 준비라고 스스로 적는다. 성경은 이 사람을 적지 않으므로, 이 문서는 그 책이 스스로 적는 데까지만 말한다 — 책의 목적, 첫 문장, 칭의를 법정의 선언으로 푼 자리, 그리고 예정론을 캐물을 때 그가 먼저 그은 경계다. ※ 이 문서는 성경 밖의 교회사·신학사를 다룬다. 성경 본문이 아니라 역사 기록과 신학 전통에 기댄 서술이 들어 있다.

개요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를 남긴 사람이다. 이 문서가 대는 것은 그 책 하나다.

성경은 이 사람을 적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어난 해와 죽은 해, 살던 곳, 다른 저작, 그리고 그의 신학이 뒷날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를 이 문서가 적지 않는다. 책이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을 무엇이라 적는가

기독교 강요 앞머리의 읽는 이에게에서 그는 이 책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스스로 적는다 — 이 수고에서 내가 뜻한 바는 이것이다. 거룩한 신학에 뜻을 둔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 읽기에 준비시키고 가르쳐, 거기에 쉽게 들어가고 걸림 없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어 이렇게 적는다 — 신앙의 요체를 모든 부분에서 아우르고 그 순서로 정리하여, 이를 바르게 붙든 이가 성경에서 무엇을 먼저 찾아야 할지, 그리고 거기 담긴 것을 어느 목표로 돌려야 할지 정하기 어렵지 않게 하려 함이다.

그는 이 책을 성경을 대신하는 것으로 적지 않는다 — 성경으로 들어가는 준비로 적는다. 이 문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여기다.

조직신학 문서가 이 책을 조직신학의 자리로 드는 근거이기도 하다.

첫 문장 —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를 아는 것

제1권은 장 제목부터 이렇게 시작한다 —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를 아는 것은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서로 붙어 있는가’.

그리고 첫 문장이 이것이다 — 참되고 굳센 지혜라 할 만한 우리 지혜의 거의 전부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를 아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사람은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곧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그 자리에서 사도행전을 인용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사도행전 17:28)

칭의를 무엇이라 적는가 — 법정의 선언

제3권에서 칭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며 그는 이렇게 적는다 — 이제 이것을 속속들이 다루어야 하며, 이것이 종교를 떠받치는 핵심 축임을 기억하면서 다루어야 한다.

이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가 무슨 말인지를 법정의 그림으로 푼다.

  •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으로 의롭다 여겨지고 그 의로 말미암아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 의롭다 함을 받은 이는 죄인의 자리가 아니라 의인의 자리에 놓이며,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선다 — 모든 죄인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
  • 죄 없는 피고가 공정한 재판장의 법정에 이끌려 가 그 무죄대로 판결되면 그 재판장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듯,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이신칭의 문서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라 적는 자리의 근거가 여기다.

예정을 캐물을 때 — 그가 먼저 그은 경계

그는 예정론을 ‘정의’하기 전에 ‘경계’부터 적는다. 이 문서도 그 차례를 그대로 따른다.

  • 먼저 기억할 것은, 예정을 캐물을 때 하나님의 지혜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겁 없이 함부로 뛰어들면 호기심도 채우지 못하고, 빠져나갈 데 없는 미로에 들어간다
  • ‘주께서 자기 안에 감추어 두기를 원하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헤집는 것은 옳지 않다’
  • 자기 뜻의 비밀 가운데 우리에게 드러내기로 정하신 것은 자기 말씀으로 내어 주셨다

그 자리에서 그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12)

그리고 주의 말씀이 그분에 대해 붙들어도 되는 것을 살피게 하는 유일한 길이며, 보아야 할 것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라 적는다.

그 경계 안에서 그는 예정을 이렇게 적는다.

  •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무엇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자기 안에 정해 두신 영원한 작정이라 부른다
  •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으로 지어지지 않고, 어떤 이에게는 영생이,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정죄가 미리 정해진다’

그 본보기로 그는 신명기를 든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신명기 32:8)

이 문서는 그가 적는 것을 적을 뿐, 그것을 이 사이트의 입장으로 세우지 않는다. 어디까지 말할지의 선은 그가 스스로 그었고(말씀이 드러낸 데까지), 이 문서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1. 성경이 적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문서가 대는 근거는 그의 책뿐이고, 책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이 문서도 말하지 않는다.

2. 그는 자기 책을 ‘성경으로 들어가는 준비’라 적었다: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다.

3. 캐물음의 경계를 그가 먼저 그었다: 예정을 다루기에 앞서 말씀이 드러낸 데까지라고 적고, 그 자리에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12)를 인용한다.

4. 칭의를 ‘법정의 선언’으로 적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 앞에서 의인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라고 그림을 들어 푼다.

5. 그의 생애와 다른 저작, 그리고 뒷날의 평가를 성경도 그의 책도 밝혀 적지 않는다 — 이 문서는 적는 데까지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