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

하나님이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들이 **은혜의 상태에서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사람이 붙드는 힘이 아니라 **붙드심을 받는** 것이므로, 「끝까지 버팀」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지심」에 가깝다.

개요

견인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들이 **은혜의 상태에서 끝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7장이 그 문장이다 —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으시고, 효력 있게 부르시고, 자기 영으로 거룩하게 하신 이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도 끝내도 떨어질 수 없고, 반드시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영원히 구원을 얻는다.」 예수의 말씀이 그 근거로 놓인다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9}). ⚠️ **낱말에 주의할 것.** 「견인(堅忍)」은 「끌어당김」이 아니라 **굳게 견딤**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듯 고백서는 그 견딤의 힘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둔다.

무엇에 달려 있는가

고백서는 견인이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다**고 못 박고, 무엇에 달렸는지를 넷으로 든다 — 「성도의 이 견인은 자기 자유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성부 하나님의 자유롭고 변치 않는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선택의 작정이 변치 않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의 효력에, 성령과 하나님의 씨가 그들 안에 머무심에, 그리고 은혜 언약의 성질에 달려 있다. 이 모든 것에서 견인의 확실함과 그르침 없음도 함께 나온다.」 대요리문답도 같은 넷을 다른 말로 든다 — 「참 신자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들에게 견인을 주시려는 그의 작정과 언약과, 그리스도와 끊어질 수 없이 하나 됨과, 그가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하심과, 하나님의 영과 씨가 그들 안에 머무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도 끝내도 떨어질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지키심을 받는다.」 ⭐ 넷 다 **사람 밖에 있다.** 그래서 견인은 「내가 얼마나 굳센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붙들고 계신가」의 문제가 된다. 성경도 그 힘을 하나님께 돌린다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그러면 죄에 빠지지 않는가

고백서는 이 교리가 **죄를 가볍게 만들지 못하도록** 제3항을 붙여 둔다 —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탄과 세상의 시험으로, 안에 남은 부패가 우세함으로, 자기를 지키는 수단을 소홀히 함으로 무거운 죄에 빠질 수 있고 한동안 거기 머물 수도 있다. 그로써 하나님의 언짢으심을 사고, 그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은혜와 위로를 얼마간 잃고, 마음이 굳어지고 양심이 상하며, 남을 다치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며, 이 세상에서 받는 징계를 자기에게 불러들인다.」 ⭐ **즉 「떨어지지 않는다」가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무거운 죄에 빠질 수 있고, 한동안 거기 머물 수도 있으며, 그 값도 실제로 치른다 — 하나님의 언짢으심, 잃은 위로, 굳어진 마음, 상한 양심, 남에게 준 상처, 이 세상에서 받는 징계. ⛔ **그러므로 이 교리는 「한 번 믿었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도 된다」와 정반대다.** 고백서가 그 말을 할 자리를 미리 막아 놓았다.

떨어져 나간 사람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일과 이 교리가 부딪히는 자리다. 믿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떠나는 일은 실제로 있다. 성경은 그 경우를 **「원래 속하지 않았던 것」**으로 읽는다 —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한1서 2:19}). ⚠️ **이 판단은 사람이 남에게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 말을 이미 떠나 버린 무리를 두고 했지, 지금 넘어져 있는 사람을 가려내라고 준 잣대가 아니다. 고백서 제3항이 말한 대로 **성도도 한동안 무거운 죄에 머물 수 있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견인은 예정론·칭의와 한 줄로 이어져 있다. 선택이 변치 않고, 그리스도의 공로가 모자라지 않으며, 성령이 떠나지 않으신다면, **그 결과가 견인이다.** 고백서가 견인을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그 셋의 결과**로 적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래서 이 교리가 주는 것은 자만이 아니라 **확신**이다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로마서 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9}). 그리고 그 확신은 성화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 지켜 주시는 이가 계시다는 것이 곧 힘써 살 이유가 된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다서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