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

성경으로 받는 책들의 목록을 말한다. 개신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예순여섯 권을 정경으로 받고, 그 밖의 책은 외경으로 구별한다.

개요

정경(正經)은 성경으로 받는 책들의 목록을 가리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은 그 목록을 책 이름으로 하나하나 적은 뒤 이렇게 맺는다 — 이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어져 믿음과 삶의 법이 된다.

벨직 신앙고백도 같은 목록을 적으며 시작한다 — ‘거룩한 성경은 두 책 곧 구약과 신약에 담겨 있고, 그것들은 정경이며 그것을 거슬러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다.’

개신교가 받는 것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모두 예순여섯 권이다. 그 밖의 책은 외경으로 구별한다.

무엇이 그 책을 정경으로 만드나

이 물음의 답이 이 교리의 핵심이다. 고백서는 그 권위가 교회에 있지 않다고 못 박는다 —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할 그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벨직 신앙고백도 같은 자리를 짚는다 — ‘그것은 교회가 그렇게 받아 인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 무엇보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언하시기 때문이며, 그것들이 그 증거를 스스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도 그 근거를 하나님께 둔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디모데후서 3:16),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베드로후서 1:21).

그러면 교회는 아무 일도 안 했는가. 고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 교회의 증언이 성경을 높이 여기도록 움직이고 이끈다고 적는다. 다만 확신의 뿌리는 다른 데 둔다.

그러면 확신은 어디서 오나

고백서는 성경 자체가 지닌 표지들을 길게 적은 뒤, 마지막에 한 가지를 따로 든다 — ‘그러면서도 성경의 그르침 없는 진리와 신적 권위를 온전히 확신하게 되는 것은, 성령이 말씀으로 또 말씀과 함께 우리 마음에 증언하시는 내적 사역에서 온다.’

대요리문답도 같은 차례로 답한다 — ‘성경은 그 위엄과 순수함으로, 모든 부분이 서로 맞음과 전체가 향하는 바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점으로, 또 죄인을 깨우쳐 돌이키게 하고 믿는 이를 위로하며 구원에 이르도록 세우는 그 빛과 능력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성경으로 또 성경과 함께 사람의 마음에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영만이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온전히 확신시키실 수 있다.’

둘 다 ‘표지들’과 ‘성령의 증언’을 나란히 두되 순서를 지킨다 — 표지는 논거이고, 온전한 확신은 성령이 주신다.

외경은 왜 정경이 아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짧고 분명하다 — ‘흔히 외경이라 불리는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성경의 정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가 없고, 다른 사람의 글과 다르게 인정되거나 쓰여서는 안 된다.’

벨직 신앙고백은 그 책들의 이름을 적고 읽는 것과 근거로 삼는 것을 가른다 — ‘교회는 이것들을 읽고 정경과 맞는 만큼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증언으로 믿음이나 기독교 신앙의 어떤 조항을 굳게 할 만한 힘과 효력을 결코 갖지 못하며, 다른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감리회 종교강령도 같은 선을 긋는다 — ‘거룩한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읽히지 않고 성경으로 증명되지도 않는 것은, 믿음의 조항으로 믿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고, 구원에 꼭 있어야 하거나 필요한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세 고백이 서로 다른 교단의 것인데 같은 방향으로 말한다. (외경 참조)

갈리는 자리

어느 책이 정경인가는 교파마다 다르다.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개신교가 외경이라 부르는 책 가운데 일부를 정경으로 받는다.

이 문서는 개혁주의 신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적는다. 그 신조들이 다른 쪽 근거를 어떻게 반박하는지, 또 정경이 역사 속에서 언제 어떻게 확정되었는지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 성경도 신조도 그것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를 새로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저장소가 근거로 삼는 고백서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밝힐 뿐이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정경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더하지도 빼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성경 스스로 그 선을 긋는다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신명기 4:2),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요한계시록 22:18).

고백서는 그 선을 이렇게 적는다 — ‘거기에는 성령의 새로운 계시로든 사람의 전통으로든 언제라도 아무것도 더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목록이 닫혀 있기에 마지막 재판장도 정해진다 — ‘종교의 모든 논쟁을 판가름하고, 공의회의 모든 결정과 옛 저자들의 견해와 사람들의 교훈과 사사로운 영들을 살피며, 그 판결에 우리가 머물러야 할 최고의 재판장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 다른 이일 수 없다.’

예수께서도 구약을 그렇게 대하셨다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한복음 10:35),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누가복음 2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