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
하나님이 사람 앞에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신 일을 말한다. 성경은 그 나타나심을 적으면서 동시에 아무도 하나님을 그대로 보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
개요
신현(神現)은 하나님이 사람 앞에 볼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신 일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런 자리를 여럿 적는다 —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창세기 18:1),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출애굽기 3:2).
그런데 성경은 같은 입으로 정반대를 말한다 —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애굽기 33:20),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한복음 1:18).
그래서 신현은 ‘하나님을 다 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이도록 오셨다’로 읽어야 하는 자리다. 모세에게 허락된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 —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애굽기 33:23).
성경 속 주요 자리
아브라함에게 — 마므레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다(창세기 18:1).
야곱에게 — 씨름한 뒤 야곱이 그 자리를 이렇게 이름 짓는다 —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창세기 32:30).
모세에게 —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출애굽기 3:2), 그리고 모세의 반응이 이어진다 —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출애굽기 3:6). (호렙산 참조)
온 백성에게 — 시내산에서는 불과 연기로 나타나신다 —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애굽기 19:18).
선지자에게 — 이사야는 성전에서(이사야 6:1),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본다 —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에스겔 1:28).
본 사람들의 반응
성경이 적는 반응이 한결같다 — 두려움이다.
· 모세 —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출애굽기 3:6)
· 이사야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6:5)
· 마노아 —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사사기 13:22)
· 에스겔 —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에스겔 1:28)
야곱이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놀란 까닭도 여기 있다(창세기 32:30) — 본 사람이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성경의 나타나심에 자주 함께 나오는 이름이 여호와의 사자다. 그가 누구인지는 그 문서에서 다룬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신현이 지키는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다.
· 하나님은 사람이 담을 수 없는 분이다 — 그대로 보면 살 수 없다(출애굽기 33:20).
· 그런데도 사람에게 오신다 — 보이도록, 들리도록, 견딜 수 있도록 낮추어 오신다.
요한은 이 둘을 한 문장에 붙여 놓는다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18). (성육신 참조)
구약의 나타나심이 성자의 나타나심이었는지는 성경이 그렇게 못 박아 말하지 않고 견해가 갈린다. 이 문서는 그 이상을 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