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붙드시고 이끄시고 다스리시는** 일. 창조가 「있게 하심」이라면 섭리는 「그 뒤로도 손을 놓지 않으심」이다.
개요
섭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붙드시고 이끄시고 다스리시는** 일을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은 이렇게 연다 — 「만물을 지으신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은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로 모든 피조물과 행동과 일을,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붙드시고 이끄시고 배치하시고 다스리신다. 이는 그르침 없는 그의 미리 아심과, 자기 뜻의 자유롭고 변치 않는 의논을 따른 것이며, 그의 지혜와 능력과 공의와 선하심과 긍휼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같은 것을 훨씬 짧게 묻고 답한다 —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신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말하자면 그의 손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신다. 그리하여 풀과 나물,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병, 넉넉함과 가난함, 참으로 모든 것이 우연히 오지 않고 아버지의 손에서 온다.」 ⭐ 두 고백이 함께 못 박는 것은 **「우연은 없다」**이다. 성경도 그렇게 적는다 —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 16:33}),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편 103:19}).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고백서가 섭리의 범위를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로 적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29}),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태복음 10:30}). 벨직 신앙고백 제13조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다 — 「만물을 지으신 그 하나님은 지으신 뒤에 그것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운수나 우연에 내맡기지도 않으시며, 자기의 거룩한 뜻을 따라 다스리고 이끄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의 정하심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람의 목숨과 하루도 그 안에 있다 —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사도행전 17:25}),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사도행전 17:28}).
하나님은 수단을 쓰신다
섭리를 「하나님이 다 하시니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로 읽지 못하도록, 고백서는 **제2원인**과 **수단**을 따로 적어 둔다. **제2원인** —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작정에 비추어 보면, 첫째 원인이신 하나님에게서 모든 일이 변함없이 또 그르침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같은 섭리로 하나님은 그 일들이 제2원인의 성질을 따라 필연으로든 자유로든 우연으로든 일어나도록 정하신다.」 **수단** — 「하나님은 보통의 섭리에서 수단을 쓰신다. 그러나 기뻐하시는 대로 수단 없이도, 수단 위에서도, 수단을 거슬러서도 일하실 자유가 있으시다.」 ⭐ 즉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길까지**다. 그래서 일하고 기도하고 약을 쓰는 일이 섭리와 다투지 않는다 — 그것들이 섭리의 방식이다. ⛔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수단에 **매이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같은 항이 함께 적는다.
악과 죄에까지 미친다 — 그러나
섭리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자리다. 고백서는 여기서 **두 가지를 동시에** 못 박는다 —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한 선하심이 섭리 안에 드러나므로, 그 섭리는 첫 타락과 천사와 사람의 다른 모든 죄에까지 미친다. 그것은 그저 내버려 두심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강한 묶으심과 배치하심과 다스리심이 함께 있는 것이어서, 여러 갈래로 자기의 거룩한 목적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면서도 그 죄됨은 오직 피조물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가장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지으신 이도 아니시고 죄를 인정하시는 이도 아니시며 그러실 수도 없다.」 벨직 신앙고백도 같은 두 가지를 나란히 둔다 —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저질러진 죄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고 그 죄를 물으실 수도 없다. 그의 능력과 선하심이 너무 크고 헤아릴 수 없어서, 마귀와 악한 사람이 불의하게 행할 때조차 하나님은 가장 뛰어나고 의로운 방식으로 자기 일을 정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 둘이 한 문장에 함께 놓인 자리가 요셉의 말이다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형들의 악은 형들의 것이고, 그것으로 이루신 선은 하나님의 것이다.** ⛔ **성경이 이 둘의 관계를 더 풀어 설명하지는 않는다.** 벨…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백서는 두 자리를 따로 적는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한동안 시험에 내버려 두실 때**다 — 「가장 지혜롭고 의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한동안 여러 시험과 자기 마음의 부패에 내버려 두실 때가 있다. 이는 이전의 죄를 징계하시려는 것이거나, 부패의 숨은 힘과 마음의 속임을 그들에게 드러내어 낮아지게 하시려는 것이며, 또 붙들어 주심을 위해 하나님만 더 가까이 또 한결같이 의지하게 하시고, 앞으로 죄지을 자리를 더 깨어 살피게 하시려는 것이며, 그 밖의 여러 의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섭리가 **교회를 향할 때**다 —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피조물에게 두루 미치는 것처럼, 특별한 방식으로 자기 교회를 돌보시고 모든 일을 교회의 유익이 되도록 배치하신다.」 성경도 그 방향을 말한다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 이 말씀은 **「모든 일이 좋은 일이다」가 아니다.** 좋지 않은 일까지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신학적 의의 및 교훈
하이델베르크는 이 교리를 「아는 것」이 무슨 유익인지를 따로 묻는다 — 「우리로 하여금 어려울 때 참게 하고, 잘될 때 감사하게 하며,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모든 일에서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의지하게 한다. 아무것도 우리를 그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이 그의 손 안에 있어 그의 뜻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벨직 신앙고백도 같은 자리에서 끝맺는다 — 「이 가르침은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우연히 우리에게 닥치는 일은 없고 오직 가장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인도로 온다는 것을 이로써 배우기 때문이다.」 ⭐ **두 고백이 섭리를 「설명」이 아니라 「위로」로 마무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섭리론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 주는 교리가 아니라, **누구의 손 안에서 일어났는지**를 알려 주는 교리다. 느부갓네살이 그 손을 인정한 말이 이렇게 적혀 있다 —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다니엘 4:35}).